월행눈이 오면 쥐덫 순이 아저씨
월행 죽으면 연락해라. 네 뒷마무리는 해줄게.이윽고 노인은 눈앞이 흐릿해져서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노인이 선 채 나무토막처럼 넘어졌다. 달이 저물었다.월행 식구들이 대체로 무뚝뚝한 편이다. 그런 가족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표현이 많은 사람을 보면 조금 어색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너무 무뚝뚝한 것 같아서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표현력이 많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착한 사람이 아무리 좋더라도 자라난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무뚝뚝함 속에서 성장하고 그것이 주는 중후함도 사랑하게 되었다. 무게가 어느새 가벼움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무게가 더 큰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도 안다.윗글에서 노인의 태도가 그렇다.
아들이 찾아왔다. 옛날, 고향에서 아들에 의해서 마을 사람끼리 서로 보복하게 되어, 그 후 친척이 죽었다. 그때 고향을 떠난 그 아들이 피를 토하는 병에 걸려 고향을 찾았다. 노인은 얼마나 아들이 그리웠을까.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아닌가. 마음속으로는 그리운 아들을 노인은 먼저 묘지로 데려간다. 그리고 친척묘에 아들을 꿇어 엎드린다. 아들은 묘지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 오랜 세월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일까.이어 노인은 한 무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한다.아들을 잃고 나머지 가족은 그 생애를 살아야 했다고 노인은 설명한다. 더욱이 그래서 너는 이제 고향에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해.
그런 노인의 모습은 아들에 대한 원망만 가득한 무서운 아버지 같다. 하지만 저 마지막 장면을 보자. 아들을 내쫓고 그런 아들이 막상 눈앞에서 사라지면 노인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지지 않을까.노인은 온 힘을 다해 아들과 인사를 한 것이다. 큰 결심 끝에 아들을 고향에서 쫓아낸 것이다. 기분이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다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고 거기에 달이 질 때까지 막이 내리는 이 묵중의 결말.
사람은 말로 많은 표현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에는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가 감정의 덩어리로 변해 버려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슬픔덩어리에, 혹은 원망덩어리에.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흐르는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저 사람은 슬픔덩어리가 되어 저렇게 바닥에 쓰러지지 않는 걸까.
눈만 내리면 구호소 식당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는 까닭 모를 공포와 부끄러움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다짜고짜 무서운 힘으로 붙잡았다.눈이 오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아들을 키웠다. 시대가 편하다는 말을 듣는 요즘도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나 당시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배가 고팠던 아들은 학교에서 뭔가를 훔친 것 같다. 어머니가 학교에 가고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구호소 식당에 들어간다. 그리고 면을 먹으라고 한다.아들은 구호소 식당이 눈에 들어왔을 때 알 수 없는 공포와 부끄러움에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국수를 먹으면서 엄마의 눈물을 발견하고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기억 때문에 그는 자라서도 국수를 싫어한다.가난이란 왜 이리 무섭고 부끄러운가. 가난은 남에게 알리지 못할망정, 자기가 먼저 나가서 남에게 가난의 상태를 알린다. (서양속담, 돈속담)학생 중에서도 부유한 아이는 얼굴에 기름기가 흐른다. 흔히 그런 아이에게 참견이 많다고 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는 왠지 푸석푸석하고 건조한 것처럼 보인다. 애가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가난은 정말 숨길 수가 없는걸까?내 어렸을 때도 그랬다. 부모님이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나는 가난함을 알았고, 나도 가난을 감추고 싶었지만 급우들에게 가난을 들켜야 했다. 그래서 눈치를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시간이었어 준비물을 꺼냈을 때, 나는 마술과 친구가 가져온 마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의 것은 12가지 정도였고, 나는 겨우 3가지, 종류도 꽤 달랐다. 그것이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마술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순간 내 마술을 숨겼다. 그렇게 친구와 차이가 나는 것이 가난의 징조를 나타낼 것 같아서, 혹은 그것을 통해 친구들이 나의 가난을 추측하리라 생각하고 숨겼다. 그러면서 준비물을 안 가져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가난의 수치요, 가난의 우려인 가난이란 게 가려졌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난함을 아는 아이를 나는 열심히 숨겨주려고 노력한다. 위로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 다짐한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쥐잡는 주제에 왜 그랬을까? 여기에 한번 나와 있으니까 너는 갈 수 없었어. 어디에 가도, 생각 때문에, 도루를 할 수 없었던 거야」바로 인간이야. 왜 쥐였냐고요? 글쎄, 모르겠네. 기어서 보니 엉뚱한 게 눈에 들어온 것 같더니 쥐잡이 아버지가 포로수용소에서 고향인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선택했다. 아니,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어. 이성이 마비돼 버린 순간에 협박인지 진심인지 판단할 수 없는 질문으로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을 선택하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고향이 있고 아내가 있는 북한을 선택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라고 손짓하며 거기 있다간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다시 남쪽을 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향을 버릴 수 없어 북쪽을 선택했는데 그제서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한다. 여기 가나 저기 가나 살기 힘들긴 마찬가지니까. 순간 자신을 구한 생쥐가 꼬리를 흔들며 남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그리고 아버지는 남쪽을 바라보셨다.이처럼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다. 상황과 감정에 더 크게 동요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가끔 사람들은 그것을 잊는다. 신문에 있는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가 등장하면 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해서"그런 바보가 어디 있느냐"라고 한다. 예전엔 나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피해자가 우매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상황에 있어보지 않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 그래서 여기서 아버지의 선택이 우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서운 상황에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갑자기 선택하다니. 더욱이 그 선택의 순간에는 이렇게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없지 않았던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었다면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사람 속이라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준이 삼촌, 마침 대대장의 차량이 도착해 총살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불행한 사건에도 예외 없이 만약이라는 가정이 따라왔다. 만일 대대장이 읍에서 타고 온 지프가 도중에 고장나지 않았다면 한 시간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300명이나 400명은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희생자는 백명 안팎으로 줄고, 또 적에게 오염된 것으로 판단되는 부락을 토벌해 백명 정도의 이적행위자를 사살했다면 납득할 만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피살자의 유백 명이란 히데타카는 옥석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사격을 의미했다.순이 삼촌 '애인 있어?'요즘 내가 자주 묻는 질문이다.당황스럽다, 이런 질문. 만약 있다면, 나는 "예"라고 대답하겠지만,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난처하다. 아니오, 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언제나 "왜?"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요즘 나는 열심히 대답할 말이 있다.운명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여기서 '운명'이란 그 남자가 '내 운명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운명이 아니다.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남들도 자기가 선택해서 만나는 거라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게 어렵다. 그래서 운이 있으면 만나는게 아니면 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운명을 거부하고 있다. 인생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노력하는 것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고교생이나 대학생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인생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무리한 부분을 관찰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다. 어떻게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겠어요?



